역사상 최대규모의 해적단을 이끈 여해적 정일수




원피스라는 만화는 많은 사람이 알 것으로 생각한다. 일본과 한국은 물론이고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만화이다. 이 원피스의 주인공은 해적이다. 남자인 내가 봐도 멋지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원피스의 주인공 루피와 그 일당들의 모습은 멋있다. 하지만 이것은 만화라는 매체를 통해 작가의 생각과 말이 우리에게 투영되고 있을 뿐 실제의 해적이 저렇게 멋지다고는 생각할 수 없을 것 같다. 국제법상 해적행위는 엄연히 척결되어야 할 중죄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해적행위는 목숨을 내놓고 해야 한다. 때문인지 해적은 아무래도 남자의 영역이라는 고정관념이 꽤 강하게 뇌리에 박혀있다. 이런 남자도 힘든 거친 해적의 삶을 살면서 유명해진 여성이 있다. 게다가 그녀는 토벌을 당하지도 않았고, 흔히 이런 곳에 몸담고 있던 사람이 그렇듯이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지도 않았다. 그녀의 이름은 정일수(鄭一嫂). 창녀 출신으로 19세기 중국에서 세계최대규모의 대해적단을 이끈 여성이다. 수만 명 이상의 해적이 그녀를 따랐다고 하니 그 위세를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정일수는 청나라 최전성기였던 1775년 무렵 태어났다. 태어났을 때의 사정은 알려지지 않으나 그녀가 26세가 됐을 때쯤에는 이미 광동성의 수상 매춘업에 몸을 담그고 있었다고 한다. 그곳에서 <홍기방(紅旗幫)>이라는 해적단 두목이었던 정을(鄭乙)과 결혼을 하게 된다.

결혼까지의 경위는 “해적이 강제로 납치했다.”라는 설과 “정을이 평범하게 청혼했다.”는 설 등 연구자에 따라 의견이 나뉜다. 어쨌든 정일수는 결혼 후 해적단 운영을 돕게 된다.

그 후 몇 년 만에 홍기방의 함선은 200척에서 600척으로 급성장한다. 다른 광동 해적들과 연합을 조직하고 그 규모는 1807년에는 1,700척을 넘는 대해적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이해에 정을이 태풍을 만나 죽게 된다.

남편이 죽은 후 정일수는 바로 홍기방을 장악하기 위한 행동에 나선다. 정을의 양자였던 장보자(張保仔)를 추대하고, 그와 결혼해서 지위를 확립한다. 장보자는 원래 어부의 자식이었으나 15세 때 홍기방에 납치되어 해적이 됐다. 그 재능을 정을이 높게 쳐서 양자가 된 인물이다.

해적단의 실권을 장악하자 정일수와 장보자는 조직 내에 새로운 규칙을 발표했다. 계속 팽창하는 조직을 통제하기 위한 철칙이었다.

 

∙ 명령에 따르지 않는 자는 목을 베어 바다에 던진다.

∙ 약탈한 보물을 배분하기 전에 훔친 자는 목을 베어 바다에 던진다.

∙ 허가 없이 여성을 폭행한 자는 목을 베어 바다에 던진다.

∙ 임무 중 밀통한 자는 목을 베어 바다에 던진다. 상대 여성은 무거운 돌을 달고 바다에 던진다.

∙ 공물을 받은 마을과 배에서 도둑질이나 난폭한 행위를 한 자는 목을 베어 바다에 던진다.

∙ 허가 없이 육지에 오른 자는 목을 베어 바다에 버린다.

∙ 조직을 빠져나갈 때는 귀를 자른다.

∙ 추한 여성을 포로로 했을 때는 그대로 놓아준다. 아름다운 여성을 포로로 했을 때는 선원에게 보수로 제공하거나 혹은 선원이 살 수 있다. 단, 그 여성을 손에 넣은 선원은 여성과 결혼해야 하며, 진정으로 아내와 같은 대우를 해야 한다. 이것을 어긴 자는 목을 베어 바다에 던진다.

 

이런 규율은 예외 없이 엄격하게 지켜졌다. 홍기방의 포로가 됐던 영국의 리처드 글래스블루는 “이 엄격한 규칙이 그들이 전투에서 용맹함과 열세에 처해도 굴복하지 않는 힘의 원천이다.”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엄격한 규율을 바탕으로 홍기방은 더욱 세력을 확대해서 최전성기였던 1810년에 1,800척의 배와 7만~8만(약 1만 7,000명이 정일수의 직속)을 거느리는 대해적으로 성장했다. 청나라 왕조에 다수의 첩자를 잠입시키는 뒷공작도 빈틈없었고, 광동 연안 일대/남중국해를 사실상 지배하게 됐다.

또한, 정일수는 전형적인 약탈행위뿐 아니라 <비즈니스적 면>에서도 수완을 발휘했다. 그중 하나가 해상 통행료 시스템이다. 남중국해를 왕래하는 상선에서 돈을 지급하면 항로의 안전을 보장했다. 물론 거절하면 약탈 대상이 됐다. 정일수는 이런 수단을 써서 거대조직을 운영했다.

 

하지만 해적이 이렇게 위세를 떨치면 황제도 손을 놓고 있을 수 없다. 마침내 청나라 왕조는 홍기방을 진압하려 해군을 출진시켰으나 반격을 받아 63척의 대형선박을 빼앗기고 말았다. 포로가 된 해군 군관들은 해적에 가담할지, 극형을 받을지를 선택하게 했고, 대부분은 홍기방에 참가했다. 당시 해군을 지휘하던 장군은 포로가 되기 전 자결했다.

자신들만으로는 처리가 어렵다고 생각한 청나라 왕조는 막대한 돈을 풀어서 영국, 포르투갈 등 서양국가에 지원을 요청했다. 연합해군이 약 2년에 걸쳐 홍기방을 몰아내려 노력했으나 구체적인 성과를 얻을 수 없었다. 그래서 청나라 왕조는 홍기방을 무력으로 굴복시키는 것보다 은혜를 베풀어 사태를 수습하는 방향으로 생각을 바꾼다.

처음에는 왕조의 제안을 거절했던 정일수였으나 결국 은사를 받아들여 홍기방을 해산시켰다. 해산의 대가로 왕조와 합의한 조건은 “해적단 전원에게 은사를 베푼다.” “지금까지 약탈한 재물을 몰수하지 않는다.”라는 것이었다.

이렇게 죄가 너무 심한 376명은 처벌을 받았으나, 그 밖의 전원이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고 자유의 몸이 됐다. 그중에는 청나라군에 들어간 자도 있었는데 정일수의 남편 장보자는 청나라 해군이 되어 고급 무관으로 출세했다고 한다.

한편 정일수는 황제에게 작위를 받고 왕조가 공인하는 귀족이 됐다. 35세에 해적에서 완전히 은퇴하고, 해적 시절에 번 거액의 부로 광동성에서 도박장/숙박업소를 개업했다. 65세로 세상을 뜨기까지 그곳의 경영은 계속했다고 하며 적어도 한 명 이상의 자녀를 가졌다고 한다.

 

그녀는 역사상 가장 성공한 해적 선장이라고 할 수 있다. 창녀로 시작해서 사상 유례가 없는 대해적단을 이끌었을 뿐 아니라, 사로잡히거나 전사하지 않고 막대한 재물을 손에 넣고 은퇴했다. 그 후에도 유복하게 살아가다 죽은 세계적으로도 드문 성공한 해적 선장이었다.



아내를 사장으로 하세요
국내도서
저자 : 사카시타 진 / 김영택역
출판 : e비즈북스 2014.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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