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줄의 글에서 탄생한 미녀의 대명사 초선(貂蟬)


175년~199년(소설상 나이)

 

삼국지 팬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경국지색의 미녀이지만 안타깝게 정사 삼국지에는 나오지 않는다. 중국 4대 미인(서시, 왕소군, 초선, 양귀비)) 중 한 명으로 실존 인물이지만 상세한 행적과 삶 등은 관우의 딸 관은병처럼 창작한 것이다. 이름은 관직을 가진 사람들이 쓰는 관을 관리하는 초선이라는 관직을 가진 시녀를 모티브로 한 것이다.

삼국지연의에서는 왕윤의 시녀였던 10대 소녀로 등장하며, 왕윤의 부탁을 받아 동탁과 여포 사이를 이간질하는 계략을 실행한다. 일단 삼국지를 주제로 했을 때 첫 여성 등장인물은 대부분 초선이다. 가상인물이지만 그야말로 삼국지의 히로인.

우선 여포에게 선을 보여 첩이 되기로 약속한 후, 동탁의 첩으로 들어가 여포를 분기하게 하여 둘 사이를 갈라놓고 여포가 동탁을 치게 하는 미녀 연환계라 불리는 대목은 삼국지에서 가장 흥미진진한 부분 중 하나이다.

여기서 초선은 단순한 계략의 도구로 이용되기만 하는 것이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동탁과 여포를 속이고 둘 사이를 갈라놓는 지혜를 보여주기도 한다. 대부분 남자만의 이야기인 삼국지에서 여성이 드라마의 중심을 차지하는 몇 안 되는 장면이다.

지혜와 담력, 그리고 자신의 정조까지 내버리는 희생정신을 가진 초선이라는 인물상은 대단히 독특했으며 덕분에 지금까지도 삼국지 관련된 이야기나 창작물에서는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위엄을 보여준다. 또한, 가공의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서시, 왕소군, 양귀비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중국 4대 미녀로 일컬어진다.

‘여포는 동탁의 시비와 사사로이 통정하여, 이 일이 발각될까 두려워서 마음속으로 불안해했다.

布與卓侍婢私通,恐事發覺,心不自安‘

삼국지연의 이전의 삼국지평화나 삼국극에서는 관서 임조 사람으로 처음부터 여포의 아내였으며 전란의 혼란 속에 헤어졌다가 왕윤에게 거두어졌다는 설정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이런 계통에서는 성이 임(任) 씨이다. 따라서 풀네임은 임초선이된다. 이런 경우 왕윤이 염연히 여포의 아내인 초선을 음모의 도구로 쓰는 상당히 비윤리적인 상황이 되기 때문에 연의에서는 이 부분을 수정했다고 추측된다.

그리고 여포가 최후를 맞을 때 서주에서 여포에게 진궁의 계책에 따르지 않을 것을 요청하여 여포가 몰락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게 된다. 삼국지연의에서는 여포가 패망한 후 초선은 여포의 식구와 함께 조조가 데려갔다고 언급하고 있으나 그 후의 이야기는 전혀 쓰여있지 않아서 후세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조조가 관우의 마음을 얻기 위해 적토마와 함께 초선을 보냈으나 관우가 초선이 요물이라며 베어버렸다는 ‘관운장 월하참 초선’이라는 경국이 태어났다.




요시카와 에이지 씨가 개역한 삼국지에서 초선은 연환계가 성공한 후 미오성에서 자결한다. 아마 초선의 비극적인 이야기를 보다 극적으로 만들기 위한 창작으로 생각된다. 또한, 동탁 사후 초선의 행보는 결코 옳다고 할 수 없기에 동탁을 죽인 일등공신인 초선이 그런 행보를 걷는 것을 볼 수 없기에 자살로 처리한 것으로 처리된다.

본래 삼국지연의에서 초선은 자결하지 않고 그 후 보통으로 여포의 첩이 된다. 심지어 나중에 서주에서 재등장한다. 보통 아주 짧게 언급되므로 못 보고 넘어가는 사람이 많을 것으로 생각한다. 조조의 공격을 받자 진궁은 여포에게 기각지계로 막을 것을 제안한다. 기각지계는 여포가 일부 병력을 이끌고 성 밖으로 나가 조조 군의 주력을 끌어들이면 그 틈에 성에 남아있던 나머지 장수들이 출진해서 적의 등을 치는 작전이었다. 반대로 조조 군이 성을 공격하면 여포의 별동대가 적의 등을 치고, 이게 뜻대로 안 되면 밖에서 별동대를 이끄는 여포가 허창에서 오는 군량 보급을 끊기만 하면 추운 겨울이라 지친 조조 군은 결국 전의를 잃을 것이라는 계략이었다. 그러나 초선은 기각지계를 실행하기 위해 성을 나가려는 여포에게 그가 성 밖에 나간 사이에 성안의 장수들이 배신하면 어찌하느냐며 울며 매달리고 이 때문에 여포는 진궁의 계책을 실천하지 못한다.

다만 당시 여포 군의 장수들은 여포의 사병이라기보다 정부군(정원의 병사)이었다가 흐름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여포를 따르게 된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여포에 대한 진정한 충성심을 가지고 있을지 불안한 상황이었기에 과연 초선의 행보가 과연 옳지 못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연의의 전 단계인 삼국지평화에서도 초선이 같은 역할로 등장하는 장면이 있으며 심지어는 장군들이 “여자 한 명 때문에 우리가 모두 죽게 생겼다.”고 통곡한다. 최근의 중국 드라마 삼국에서도 초선은 죽지 않고 계속 등장한다. 다만 여기서는 초선과 여포의 사랑을 더욱 낭만적으로 그리기 위해서인지 초선이 여포를 말리는 장면은 나오지 않으며, 서주성을 차지한 후 여포를 죽인 조조가 초선을 차지하려고 하자 초선이 자살하는 것으로 그려졌다.

어쨌든 요시카와 이에지의 영향을 받아 초선을 자살시키면 위처럼 이야기 흐름에 커다란 구멍이 생긴다.

그래서인지 최근 중국에서 제작한 드라마 <삼국>에서는 초선의 자살이 서주성을 조조에게 빼앗기고 여포가 죽임을 당한 이후로 미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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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킨조 신이치로 / 김영택역
출판 : e비즈북스 2017.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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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3대 악녀 중 부동의 멤버, 한고조 유방의 아내 여후



여후(呂后)

? ~ 180년

한고조 유방의 아내이며 황후. 명문으로 알려진 여(呂)씨의 후손이다. 시호는 남편 유방의 시호였던 고황제에서 유래해서 고황후((高皇后). 중국 최초의 황후이며, 최초로 황후, 황태후, 태황태후라는 3단계를 거친 여인이다.

 

부유한 명문 집안의 여식으로 태어났으나 아버지인 여공(呂公)이 패현에서 할 일없는 건달 노릇이나 하던 유방을 보고 그의 몸에 왕의 기운이 있다고 생각하여 억지로 시집을 보냈다고 전한다. 미인이지만 성격은 꺽달지고, 내면에 무서울 정도의 야심을 지닌 여성이었다. 심지어 포로가 되어 항우 앞에 포박당해 있을 때도 “네 놈이 뭘 어떻게 할 수 있냐? 죽일테면 죽여봐라. 너 따위가 내 남편을 이길리 없다.”라는 태도를 유지해서, 같이 포로가 된 유방의 부모와 항우가 질리게 만들 정도로 담력이 강했다.

유방이 완전 피라미 시절에도 담담하게 자기 할 일을 하며 집안을 확실히 내조했으며. 결국 아버지가 바란대로 귀인의 자리에 오른다. 물론 그 후 그녀가 중국 3대 악녀 중 하나가 되는 잔인무도한 악행이 시작되었다.

토사구팽이라는 일화로 알려진 것처럼 유방은 한신, 팽월, 경포 등 위협이 될만한 개국공신 출신 이성 제후왕을 모조리 숙청한 후, 모두 유씨 황족으로 갈아치우는 계획을 꾸미고 있었다. 그러나 유방도 내심 마음이 내키지는 않아서 노골적으로 반란을 일으킨 것이 아니라면 목숨만은 살려주려고 했다. 팽월, 한신도 그래서 직위를 빼앗기는 선에서 끝내려 했으나 여후가 나서서 이들의 목숨을 빼앗았다. 또 다른 이성 제후왕이며 유방의 죽마고우였으나 모반을 했던 노관은 “유방이 병들고, 여후는 왕을 숙청하고 있다...”하며 여후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모반을 철회하지못했다. 노관은 유방의 병이 나으면 죄를 빌 생각이었으나 결국 유방이 죽자 흉노에 투항해버렸다. 이렇게 이성 제후왕을 숙청한 여후는 한술 더 떠서 유씨마저 제거하고 모두 여씨 일족으로 채우려 생각했었다.

유방이 태자 유영이 유약하다는 이유로 폐위시키고 총애하던 측실 척부인 소생인 유여의를 자신과 닮았다고 칭찬하며 태자로 삼으려했다. 척부인도 유여의를 태자로 만들기 위해 온갖 방법을 다 쓰면서 여후와 대립했다. 하지만 유방의 생각은 주창(周昌) 등 신하들의 반대에 부딪쳤으며, 여후는 신선술을 배운다는 명분으로 숙청의 피바람을 피한 장량과 손을 잡고 당대에 유명했던 은둔 명사인 ‘상산사호’를 모셔화 유방앞에 보여준다. 자신이 불러도 오지않던 명사들이 태자를 따르는 것을 본 유방은 결국 태자를 폐위시키는 것을 포기한다. 대신 유여의를 조나라의 왕으로 봉하여 그의 모친인 척부인과 함께 가도록 했으며, 질투가 심한 여후가 자신이 죽은 후 유여의 모자를 핍박할 것을 우려해서 태자 폐위에 반대해서 여후에게 도움을 준 주창을 조나라의 재상으로 임명했다.

유방이 임종을 앞두고 있을 때 여후는 현 재상인 소하가 나이가 들었으니 후임 재상을 누구로 할지 물었다. 유방은 소하의 후임으로 조참을 지목한다. 여후가 조참 사후에는 누구를 재상으로 할지 물으니, 내정은 진평에게 맡기고, 군사는 주발에게 맡기라고 말한다. 여후가 다시 두 사람의 후임을 물으니 유방은 기가차서 대답했다.

“그 뒤는 당신이 알 바 아니오.”

 

중국 드라마 초한전기의 여후

그러나 유여의 모자는 여후의 손아귀를 벗어나지 못했다. 유방이 죽고 아들인 혜제가 즉위하자. 여후는 우선 척부인을 영항(永巷)에 감금하고, 하루종일 쌀을 찧는 형벌을 내렸다. 그 다음 조왕을 장안으로 소환해서 제거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조나라의 재상이 된 주창은 여치의 의도를 파악하고 3번에 걸친 소환 명령을 조왕의 병을 핑계로 모두 거절했다. 이에 여후는 주창을 먼저 소환한 후 조왕을 소환했다. 여의는 계모의 명을 어길 수 없어서 할 수 없이 장안으로 출발해서 궁궐에 들어왔다.

 

모친과 달리 인자한 성격이었던 혜제는 이런 어머니의 속셈을 간파하고, 미리 이복 동생을 마중나가 자신이 기거하던 건물로 데려와 침식을 같이 하며 옆에서 보호했다. 혜제가 온힘을 기울여 막았음에도 불구하고 유여의는 혜제가 아침 일찍 사냥을 나가 잠시 자리를 비운사이에 독살당했다. 유여의의 사망으로 기반을 잃은 척부인 또한 산채로 손발이 잘리고, 눈이 뽑히고, 벙어리로 만든 후 귀에 유황을 넣어 귀머거리로 만들어 돼지우리에 던져넣고 똥을 먹여 죽였다.

게다가 그 모습을 아들인 혜제에게 보여주었다. 그 후 혜제는 “사람이 되어서 이럴 수는 없습니다.”라고 어머니인 여휴에게 말한 후 정치에서 손을 놓고, 폐인처럼 지내다 23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뜨고 말았다.

아들 혜제가 죽은 후 혜제의 양자인 소제 유공이 즉위하지만, 어린 나이로 인해 여후가 섭정을 하며 국가권력을 마음대로 휘두르게 된다. 이런 과정에서 남편 유방의 유언을 어기고 연나라 왕의 자리를 자신의 친족인 여통에게 물려주고, 군대의 수장들도 여록과 여산 같은 자신의 친족에게 맡겼다. 이 탓에 소제 유공이 성장하면 복수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오자 문제가 생길 것을 우려해서, 유공을 폐위시키고 유홍을 즉위시켰다.

주로 사용한 것은 짐주(鴆酒)라는 이름의 독. 독사를 먹고 사는 새인 짐새의 깃털로 만든 술이라고 한다. 유여의도 이것으로 죽였고, 서장자인 제왕 유비와 혜제가 건배를 할 때 짐주로 바꿔치기해서 먹이려다가 혜제가 일부러 짐주가 든 잔을 들고 마시려하자 여후는 무시무시한 속도로 잔을 빼앗아 던져버렸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때 목숨을 건진 유비는 여후의 딸인 노원공주에게 봉지의 대부분을 바쳐서 여후의 손아귀에서 벗어났다고 한다.

그나마 제도혜왕은 운이 좋은 편이었다. 조은왕은 짐주를 먹고 죽었고, 유방의 또다른 서자였던 조유왕 유우는 조나라에서 말을 한 번 잘못했다가 여후에게 잡혀가서 비참하게 굶어죽었다. 여후는 조유왕을 죽이고 유방의 또다른 서자 조공왕 유회를 양나라에서 조나라로 옮겼으며 여씨의 사위로 삼았다. 그러나 조공왕가 딴 여자를 사랑하자, 여후는 그 여자를 죽였다. 조공왕은 슬퍼하며 자살했고 여후는 조공왕이 여자 때문에 목숨을 버린 어리석은 자라고 비웃으며 조나라를 자신의 조카 여록에게 주었다. 유방의 또 다른 서자 연영왕 유건이 있었는데 그가 서자를 남겨놓고 죽자 여태후는 서자를 죽이고 자신의 조카인 여통에게 연나라를 주었다.

유방의 여섯 아들, 제도혜왕, 혜제, 조은왕, 조유왕, 조공왕, 연영왕이 모두 여후 때문에 인생이 망가져 버린 것이다. 그나마 문제와 희남여왕 유장만이 화를 피할 수 있었는데 문제는 어머니 박 씨가 유방에게 사랑을 받지 못했기에 질투를 면했고, 조유왕과 조공왕이 비명횡사한 후 여후가 제안한 조나라 왕위를 겸손하게 거절함으로서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희남여왕은 어머니 조씨가 여후의 질투심으로 인해 자결하는 바람에 여후가 직접 키웠던 탓에 정이 있었던 듯 하다.

 

실로 무섭고 추진력있는 여장부였던 여후는 말년에 갑자기 투명한 푸른 개에 물리는 환각을 체험한 후 병을 앓다가 죽었다. 죽으며 자신이 없어지면 다른 유씨와 그 추종세력의 공격이 있을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유언을 남겼으나, 뒤를 이을 만한 인물들이 모두 무능력하기 그지없었다. 결국 숙청당하지 않고 살아남아 때를 기다리던 왕릉, 주발, 진평 등 유방이 천하통일할 때 큰 공을 세웠던 개국공신들과 다른 유씨들이 봉기해서 일족이 몰상당했다. 이때 유방의 오른팔로 유명한 개국공신 번쾌의 아내이자 여후의 동생이었던 여수도 살해당한다.

 

개국공신들이 봉기를 일으킬 때 그를 따르는 병사들의 충성심을 알기 위해 “여씨를 계속 따를 자는 오른쪽 어깨 갑옷을 벗고, 유씨를 따르는 자는 왼쪽 어깨 갑옷을 벗어라.”하고 명령하자 군사들이 빠짐없이 모두 왼쪽 어깨 갑옷을 벗었다고 하니 여후의 악명이 얼마나 높았는지 알 수 있다.

 

후일 한나라가 멸망한 후 혼란기에 적미군이 장안에 들어가 역대 한나라 황릉을 대거 도굴할 때 유방과 여후가 묻힌 장릉도 도굴당했는데 이 때 시체가 훼손되었다고 한다.

 

일본 코믹스 레드 드레곤에서 어린 소녀로 나오는 여후

세상의 평가는 서태후, 가남풍과 함께(가끔은 측천무후와 함께) 중국 3대 악녀의 한 명으로 불린다. 하지만 실상은 세상의 평가와 많이 다르다. 사마천은 여후의 치세에 천하가 평안했다고 평했을 정도다. 그 이유는 첫째로 전쟁에 시달리던 전국시대~초한대전의 난세보다 황실이 집안 싸움을 하는 것이 나았고, 둘째로 한나라 초기는 진나라의 강압적인 통치에 대한 반동으로 있는 그대로 내버려두는 정치, 즉 ‘무위지치’를 추구한 시기였기 때문이다. 이는 직무를 방기한다는 뜻이 아니라 백성들을 피로하게 만드는 정책을 세우지 않는 황로(黃老) 사상에 기반을 둔 정책이었다. 게다가 사마천은 여후의 행적을 제왕의 행적을 다루는 본기에 넣는 파격적인 모습까지 보여줬다. 그는 여후 시절에는 형벌을 가하는 일이 드물었고, 죄인도 드물어서 치안이 좋았고 백성들이 농사일에만 힘쓰니 입고 먹는 것이 갈수록 넉넉해지는 태평성대였다고 그녀의 공로를 칭송했다. 게다가 권력층 내부에서는 피터지는 권력싸움의 연속이었으나 여후가 치세를 잘한 덕분에 한나라를 반석에 올린 것은 그녀였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후한이 세워지고 한나라의 정통을 이어받은 광무제가 그녀의 칭호를 받탈한 이후 여후라는 이름으로 오랫동안 중국 역사를 대표하는 악녀로 통해왔으나, 최근에는 여후의 치세에 황실은 내부의 권력 다툼으로 치열한 시대였을지 몰라도, 일반 백성들에게는 특별한 전쟁도 없고, 사회가 안정기에 접어든 매우 평화로운 시대였다는 재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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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 미녀의 대명사 서시

춘추전국시대의 미인.

양귀비와 더불어 동양에서 미인의 대명사로 불리는 여인.

와신상담이라는 고사로 유명한 오나라와 월나라의 항쟁을 장식한 꽃 한송이라는 말이 어울릴 것 같다. 오왕 부차에게 패해 월왕 구천은 오나라에서 3년 동안 노예 생활을 하다 겨우 월나라로 귀국한다. 이후 오왕 부차는 천하를 가진 것처럼 향락에 젖은 생활을 하고 그 모습을 보던 월나라 재상 범려는 미인계를 써야할 때라고 생각하고 여인을 찾는다. 원래 월나라는 미인들이 많기로 유명한 나라였는데 그중에서 서시가 단연 으뜸이었다.


그녀가 도성에 들어오는 날 소문을 들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산골의 절세가인 서시를 태운 수레가 사람들 틈을 헤치고 겨우 도성 문앞에 도달했다. 수문장이 사람을 확인하기 위해 수레 안을 들여다보다 서시의 미모에 기절하는 사건까지 생겼다고 한다.

범려는 서시를 3년동안 극진히 대우하고 예능을 가르쳤다. 가무, 음율, 서화, 예법 등에 능통하게 하고 어떤 나라의 왕이라도 함락시킬 수 있는 기교도 익히게 했다.

결국 오왕 부차는 서시에게 빠져서 그녀가 요구하는 것을 모두 들어주게 된다. 오자서는 월나라의 속셈을 간파하고 왕에게 속지말 것을 몇 번이나 간언했으나 오왕 부차는 듣지 않았다. 오히려 가끔씩 서시가 속이 아파서 눈을 찡그리면 그 모습이 아름답다고, 성안의 모든 궁녀들에게 눈을 찡그리고 다니라고 명령할 정도였다.


부차는 오자서의 충언을 듣지 않고 오히려 오자서에게 자살을 명해 그를 죽게 하고 서시를 위해 재정을 탕진하는 등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그 사이에 월나라는 착실히 힘을 키우며 복수의 칼을 갈았다. 그리고 결국 오나라를 공격해 오왕 부차를 죽이고 오나라를 멸망시킨다.

이후 서시의 행보에 대해서는 확실하지 않아서인지 다양한 이야기가 존재한다. 오왕 부차에게 가기 전에 범려와 서시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고, 오나라가 멸망한 후에 범려와 함께 사랑의 도피를 했다는 이야기도 있고, 사실 서시는 오자서를 사랑했으나 그를 월나라를 위해 죽게 만들었던 죄책감에 자살했다고도 한다. 또한, 구천의 왕비 혹은 범려의 부인이 꾸민 계략에 걸려 강에 빠져 죽었다고도 한다. 이런 설들이 난무하는 것은 한무제 이전의 역사를 다루는 역사서 중 가장 신뢰성이 높은 사마천의 사기에서 오나라가 멸망한 후에 서시의 행적에 대한 언급이 없기 때문이다.

 

장자(莊子)의 천운편(天運篇)에는 효빈(效顰)이라는 설화가 있다. 서시봉심(西施捧心), 혹은 서시빈목(西施顰目)이라는 고사를 소개한 것이다. 월나라의 절세 미녀인 서시가 가슴앓이병이 있어서 언제나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는데 워낙 아름다워서 그 표정마저 절색이었다. 그려자 이웃 마을의 추녀 동시(東施)가 그 모습을 보고 자신도 가슴에 손을 얹고 미간을 찡그리고 마을을 돌아다니자 마을 사람들은 모두 기겁하며, 가난한 사람은 집에 뛰어들어가 문을 닫아걸었고, 부유한 사람은 밤을 기다렸다가 다른 마을로 이사를 갔다고 한다.


서시의 별명은 침어(沈魚)와 경국(傾國)이다. 길을 가던 그녀가 자신의 얼굴을 씻으려 강에 얼굴을 비치니 그 얼굴이 너무 아름다워서 물고기가 헤엄치는 것도 잊은 채 물속에 가라앉았다는 이야기에서 나온 말이 침어있다. 그리고 서시와 정단이 오나라에 바쳐졌을 때 그녀들이 도착하자 그 아름다움을 구경하려고 군중이 몰려드는 바람에 성문이 부숴졌으며 그녀들을 본 오자서가 정단은 “성을 무너뜨릴([傾城]) 미녀”라고 하며 받아들여도 괜찮다고 했으나 서시는 “나라를 무너뜨릴([傾國]) 미녀”라고 하며 받아들여서는 안된다고 했다고 한다. 경국이라는 별명은 여기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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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오우카 이치몬 / 김영택역
출판 : e비즈북스 2017.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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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국지색의 원조 포사

2017.06.24 02:03 |

경국지색의 원조 포사

포사, 웃음 한 번에 나라가 기울었다.

달기와 더불어 희대의 경국지색으로 꼽힌다.

그녀는 출생부터 판타지다. 하나라 말기 걸왕(桀王) 때 용이 나타나서 침을 흘렸는데 그 침을 왕이 상자속이 보관했다. 그 후 주나라 선왕(宣王) 때에 상자를 열자 도마뱀이 빠져나왔고, 그 도마뱀이 궁녀의 몸 속에 들어갔다. 궁녀는 수십년간 잉태한 후 여자아이를 낳았다. 주변의 시선을 의식한 궁녀는 아기를 요람에 태워 강물에 띄워서 버렸다고 한다.

그 시기를 전후해서 당시 주나라의 수도였던 호경에서 아이들 사이에 이상한 노래가 불리고 있었다. 산뽕나무로 만들 활과 기箕초(콩대)로 만든 화살통이 나라를 망하게 한다는 내용이었는데 이는 점술가의 예언과 같았다. 그래서 주나라 조정은 산뽕나무로 만든 활과 기초로 만든 화살통을 만드는 것을 법으로 금지시켰다.

그런데 시골의 노부부가 조정의 방침을 듣지 못하고 산뽕나무로 만든 활과 기초로 만든 화살통을 만들어 팔기위해 호경에 온다. 단속하러 관군이 들이닥치자 도망갔지만 여자는 잡혀서 사형을 당하고 남자는 도망에 성공한다. 도망가던 길에 강가를 지나던 중 요람이 떠내려오는 것을 본다. 새들이 모여 요람을 부리로 잡아당겨 땅으로 끌어올리려 하는 것을 본 남자는 요람 속의 아이를 데려다 키우게 된다.

그러나 남자는 너무나 가난해서 아이를 키울 수 없자 다른 사람에게 팔아버렸다. 그녀를 사간 사람은 포성(褒城)에 사는 사대(似大)라는 남자였다. 그는 아내와 아들은 모두 무사한데 딸만 얻으면 태어나는 족족 죽어나가는 터라 여자아이를 얻고 싶었고, 가난한 촌부는 그녀를 팔아넘겼다. 그리고 사대가 포사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키웠다.

 

14세가 되자 아름다움이 두드려졌고, 17세가 되자 절세가인이 되었다. 그러나 시골에서 살고 나이가 어려서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는데 빨래랑 밭일하는 시골 여자아이의 모습 그대로였기 때문이다.

어느날 같은 포성 사람인 홍덕이 그녀를 보고 시골 소녀같은 모습에 감춰진 아름다움에 놀랐다. 그리고 그녀를 왕에게 바치면 왕에게 밉보여서 3년이나 옥에 갇혀있는 아버지 포향을 구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는 많은 돈을 주고 그녀를 사서 좋은 옷을 입히고, 예법을 가르쳐서 키운 후 당시 주나라 왕인 유왕(幽王)에게 바쳤다. 그녀는 빼어난 미모로 후궁에 발탁되었고 옥에 갇혀있던 포향은 바로 풀려났다.

 

유왕은 포사를 총애하여 원래 왕후였던 신후와 그녀가 낳은 태자 의구를 폐하고 포사를 왕후로, 포사가 낳은 백복을 태자로 삼았다.

문제는 그 다음에 발생한다.

예쁘긴 한데 워낙 웃지않아서 왕의 애간장을 녹였고, 어느날 한 궁녀가 비단옷을 입고 지나가다 매화나무 가시에 옷이 걸려서 찢어지는 소리를 득고 그 소리를 들으면 웃었다. 이에 유왕은 포사를 위해 비단을 있는대로 사서 찢어댔고 이로인해 국고를 탕진하게 된다.

게다가 어느날 봉화 관리자가 실수로 주나라가 위험할 때 쓰는 봉화를 피우자 제후들이 놀라 부리나케 모였다가 실수라는 것을 알고 화내며 돌아간 일이 있었는데 포사는 그 모습을 보고 더욱 신나게 웃었다. 그 웃음소리가 마치 악기와 같고, 얼굴은 꽃이 활짝 핀 것처럼 아름다웠다고 한다. 그래서 유왕인 신이 나서 봉화를 시도때도 없이 자꾸 피웠다. 결국 하도 이런 짓을 하다보니 진짜 오랑캐가 처들어왔을 때 봉화를 올려도 거짓말인 줄 알고 정작 제후가 아무도 오지 않았고, 유왕은 오랑케에게 죽임을 당한다. 일부 제후는 이게 진짜임을 알았으나, 여자 하나에 저렇게 미친 왕이라면 이 기회에 죽는게 낫다고 방치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오랑캐인 건융이 유왕을 죽이고 포사의 행방은 정확히 알려진 것이 없다. 견융에게 끌려간 후 노리개취급을 당한 후 목을 매어 자살했다고 전해진다.

달기나 서시와 달리 누군가 작정하고 나라를 망하게 하려고 보냈다는 이야기도 없는 점에서 더욱 무서운 경국지색의 미녀.

 

포사로 인해서 경국지색이라고 나왔다. 포사는 하나라를 멸망하게 만든 말희, 은나라를 명망하게 만든 달기의 계보를 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말희-달기-포사의 이야기는 너무 비슷하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나라가 건국될 때는 남자를 부각시키고, 나라가 망할 때는 여자를 부각시킨다.

세여인 모두 정복한 나라에서 바쳐진 미녀들이고, 빼어난 미모로 왕을 사로잡아 결국 나라를 망치게했다는 구조로 이야기가 흘러간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이런 기록을 믿을 수 있겠는가하는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사실 서주 말기에 주왕실은 세력이 약해졌다고 볼 수밖에 없다. 봉화로 제후군을 불러 모았다는 이야기는 결국 주 왕실의 중앙군이 약해서 제후가 도우러 와야 위급을 벗어날 정도로 주 왕실이 약해졌다는 의미가 된다. 일각에서는 포사의 웃음을 듣기 위한 용도로 봉화를 피운 것은 단순히 포사 때문이 아니라, 중앙군이 약해지고 제후군들이 강해지면서 위기감을 느낀 주 왕실이 왕권을 세우려는 시도를 한 것이 아니냐는 해석을 하기도 한다.

이런 시도가 결국 결정적 순간에 제후들이 배신하면서 비극적 결말을 맞이한 것이다.

현대적 관점에서 포사 개인보다는 그녀를 총애하면서 신후와 원래 태자였던 의구를 지지하는 제후와 대결구도를 만들었을 뿐 아니라 제후들의 신임을 잃은 주 유왕의 책임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주 유왕은 즉위 후에 힘있는 제후국 중 하나인 진(晉)나라와 친밀한 관계를 맺었으며, 당시 진후인 문후는 포사와 백복에 반대하는 제후국을 공격하기도 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문후는 등장하지 않고, 나중에 오히려 주 평왕을 세우는 데 가장 큰 공을 세웠다는 언급이 있다. 포사와 관련된 일련의 사건이 당시 서주 편으로 남아있던 제후들마저 왕실에 등돌릴 동기를 준 것이라 할 수 있다.


유튜브 마케팅 가이드
국내도서
저자 : 스가야 신이치,고토 미치오 / 김영택역
출판 : e비즈북스 2014.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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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우, 조조와 삼각관계를 만들었던 절세미녀 패왕태후 두씨(杜氏)



삼국지를 읽으면 관우의 유비에 대한 충정은 많은 사람을 감동시킨다.

특히 조조의 온갖 정성을 뿌리치고 유비를 찾아 두 명의 형수를 데리고 길을 떠나는 오관참장(五關斬將)의 이야기는 많은 삼국지 독자를 매료시킨다.

그런데 관우가 이렇게 조조의 곁에 있는 것을 싫어했던 것에 대한 이야기가 촉기와 위씨춘추에 쓰여있다.



이 이야기에 나오는 관우는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관우답지는 않으며 관우를 공격할 때 많이 차용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것은 두씨라는 한 여인을 둘러싼 조조와 관우의 삼각관계 이야기이다.



그녀는 원래 진의록의 아내였으나 건안 3년 조조가 여포를 하비에서 포위할 때 진의록이 원술에게 도움을 청하러 갔다가 그곳에서 원술의 주선으로 한 왕실의 여인을 새로이 아내로 맞이하게 된다. 

이때  관우가 진의록이 원술에게 도움을 요청하러 갔으니 그의 아내 두씨를 자신이 아내로 삼고 싶다는 부탁을 하자 조조는 이를 승낙한다

시간이 흘러 하비성이 함락 직전의 상태가 되고 관우는 다시 찾아와 두씨를 아내로 삼을 수 있게 한다는 약속을 여러차례 상기시켰다.

평소 관우의 성품으로 보아 어울리지 않은 일이었기에 조조는 괴이하게 여겼고 하비성을 함락시킨 후 두씨를 불러 확인해보니 정말 엄청난 미인이었다.




결국 조조는 관우와의 약속을 어기고 두씨를 차지해버린다. 이 사건으로 관우가 조조를 싫어하게 되었다고 촉기와 위씨춘추에 쓰여있다

그녀는 진의록과 사이에서 나중에 위나라의 권신이 되는 진랑이라는 아들이 이미 있었지만 조조는 개의치않고 진랑을 친아들처럼 보살폈다고 한다. 

이 진랑은 나중에 위나라의 권신이 된다. 

그리고 조조와의 사이에서 조림, 조곤, 금향공주를 낳았다.

그녀는 조조의 깊은 총애를 받았으며 왕후의 다음 서열인 부인의 직을 받았으며 그녀의 아들 조림이 퍠왕이 되어서 패왕태후라고 불리며 상당한 권세를 자랑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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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락지형의 개발자 달기(妲己)



기(己)성 소(蘇) 씨다. 중국 은왕조 말, 주왕을 타락시킨 장본인 혹은 요녀로 알려졌다. 중국 4대 요녀 중의 하나.

 

각종 사서의 기술이 제법 엇갈리는 편이지만 화술이 능하고 기교(!)가 극에 달하여 주왕의 애를 태우는 데에 능숙했다는 것이 공통된 시각이다.

 

사실상 달기는 포락 같은 형벌을 스스로 만들어낼 위치에 있는 것은 아니었다. 공포정치를 펼치고 주지육림을 만들면서 세금을 올리고 향락에 빠져 살던 것은 달기가 아닌 주왕 본인이었다. 게다가 갑골문 기록이 아닌 사마천의 사기 한정, 다만 주왕에게 목숨을 걸고 바른 정치를 할 것을 간한 숙부 비간을 죽였을 때 이를 채근질한 것은 달기라는 기록도 있다. 비간은 당시 성인이란 소리를 들었는데, "성인의 심장은 구멍이 7개라던데." 하면서 직접 확인해보자고 부추겼다고 한다. 죄인을 숯불 위에 기름을 듬뿍 발라 달궈지고 있는 구리 원통 위를 걷게 했다는 포락지형의 개발자라고도 한다.

 

그런 주왕에게 아양 떨면서 자신의 위치만 확고히 하는 데 그쳤기 때문에 악녀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한 면 때문에 주나라가 은을 멸망시키기 위해 달기를 보낸 게 아닌가 하는 추측도 있다. 달기의 달(妲)이 계집 녀(女)와 무왕의 동생인 주공의 이름 단(旦)으로 이루어져 있는 자라는 점에서 이런 발상이 나왔다. 그래서 고우영 십팔사략에서는 상상력을 더해서 아예 주공 단이 달기를 길러 은나라에 보냈다는 흥미로운 각색을 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상상이었고, 달기에 대한 사서들의 기록은 그냥 요부로만 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기록들은 당연하지만, 주나라 이후의 사서에 한정된 것이며, 현대에 들어와 주나라 이전의 갑골문들이 다수 발견되면서 이 문제가 다시 수면위로 떠올랐다.

 

만일 갑골문을 제외한 다른 기록 속의 달기가 주왕의 그런 막장 행동을 즐거워하지 않았다면 주왕이 그렇게까지 막장은 아니었을 거란 주장도 있을 법한데 사실 막장에 이른 주왕 성격 보면 즐거워하지 않는 순간 목이 먼저 달아나지 않을까 싶다. 최후조차도 주왕이 참살했다는 것과 주왕 자살 후 목을 매었다는 설, 무왕에게 붙들려 참형되었다는 것으로 나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부류의 이야기는 하나라가 망할 때의 말희, 서주가 망할 때의 포사의 경우에서도 비슷하게 반복되기 때문에 정확히 실제 역사라고 보기는 어렵다. 주나라의 정당성을 위해 꾸며낸 설화일 수도 있고, 작은 사례가 확대된 것일 수도 있는 것. 앞서 말한 대로 갑골문만 봐도 주왕은 그렇게 나쁜 왕이 아니다.

 

그 밖에 처형하려던 자들이 그녀의 외모에 홀려서 처형을 못 하자 고자인 늙은이를 참수인으로 사용했는데 그 늙은이의 그것조차도 설 정도의 미모였다고 하며……!, 그 얼굴을 보자기로 가리고 나서야 목을 벨 수 있었다고 하는데 보자기에서 빛이 났다고 한다. 이런 건 후대에 덧붙인 이야기니까 크게 신경 쓸 거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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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전설속의 미녀 말희(末喜)



末喜


중국 전설 속의 미인. 경국지색의 미모를 가졌으며 하나라의 마지막 제왕, 걸왕의 비(妃)였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말희는 산동 유시씨의 딸이었는데 때마침 걸왕이 그곳의 사람들을 지배하고 멸망시키자 그 복수로 걸왕을 타락시켰다고 한다. 그래서 걸왕한테 주지육림을 시키고 거대한 궁궐을 만들어달라고 요구했다.

 

결국 상나라의 탕왕한테 잡혀 걸왕과 함께 추방당해 최후를 맞았다고 전해진다.

 

이를 어떻게 보면 비록 복수를 위해 일을 벌였다지만 그때문에 백성들이 고통을 받았기에 변호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다른 시각으로 보면 걸왕은 애초에 성격부터가 난폭했고 자신의 일족을 위해 스스로 악역이 된 걸보면 여자가 한을 품으면 여름에 서리가 낀다라는 말을 보여주었다.

 

일설로는 당초부터 걸은 말희를 요구하였다고 전해진다.

 

역사상의 기록을 비교해 보면 하나라 걸왕과 말희의 이야기와 상나라 주왕과 달기의 이야기는 마치 하나의 이야기처럼 동일하다. 이런 이유로 옛날부터 둘 중 하나가 다른 쪽의 모티프가 아닌가 하는 추측이 있어왔다. 하나라가 고증학의 등장 이래 그 존재가 부정되어 가면서, 한때 요녀 달기의 이야기를 말희에게 덮어 씌었다는 설이 중심이 되었다. 근래 은허 유적지에서 대량의 갑골문이 발견되면서 상나라의 존재는 증명해도 하나라의 존재를 증명하는 기록이 나오지 않았기에 한쪽이 다른 한쪽의 모티브가 되었다는 추측의 신빙성은 급격히 올라갔다. 다만 기존에 추측했던 것과는 차이를 보이는 기록들이 나왔는데, 갑골문에서 서경이나 사기 속의 기록과 달리 오히려 주왕대에 왕권이 안정되고, 제사를 바로 모시는 모습을 보이면서, 주왕을 깎아 내리기 위해 실존하지 않고 전설속에 전해지는 말희의 이야기를 달기에 겹쳤다는 설 또한 힘을 얻게 되었다.

 

짧게 말해 주왕때 왕권이 안정되고 나라운영에 문제가 없었다면 달기는 나라를 망치는 요녀가 될수가 없다. 이렇게 보면 주나라가 상나라를 멸망시키고 그럴듯한 건국의 명분을 만들기 위해서 주왕을 달기라는 요녀의 여색에 빠져 폭군이 되어 나라를 망쳤다고 깎아내린걸로 볼수 있다. 전설에 전해지는 요녀 말희의 이야기를 주왕의 애첩(또는 비)인 달기에 덮어씌웠다는 이야기다.

 

현재 하나라의 실존 가능성 자체가 강하게 의심받고 있기에 앞으로 새로운 발견이 이루어져야 그녀의 실존여부와 행적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만화 《봉신연의》에서는 달기와 동일인물이라는 설정. 이때 여와가 탕왕에게 힘을 주는 장면을 목격하고 그녀의 부하가 된다. 참고로 한국에 처음 단행본으로 출시되었을 때는 '말희(妺喜)'의 '말(妺)' 자를 번역자가 잘못 본 나머지 '매희(妹喜)'로 오역해 버렸다. 이래서 고전소재 만화의 번역은 번역가를 잘 골라야 된다.

 

게임 《여신전생》 시리즈에서는 요수 체페리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체페이란, 걸비(桀妃)를 중국어 발음으로 읽은 것이다. 《진 여신전생 if…》에서 체페이는 탐욕계의 보스로 등장하는데, 탐욕계에서 얼마나 보물상자를 열었는가에 따라서 강함과 모습이 변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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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잔 다르크 락슈미 바이(Lakshmi Bai, 1835년경 - 1858년 6월 18일)


인도의 잔 다르크 락슈미 바이

 

락슈미 바이(Lakshmi Bai, 1835년경 - 1858년 6월 18일)는 인도 중부에 있는 마라타 동맹의 작은 토후국 잔시의 왕비. 인도 대반란 때 지도자 중 한 명으로 영국군을 상대로 용감히 싸워서 ‘인도의 잔 다르크’라고 불린다.

 

태어난 해는 정확하지 않으나 1835년 설이 있고 그밖에 1820년대 후반이라는 설도 있다.

몰락한 마라타의 몰락 귀족 출신으로 어릴 때는 마라타 동맹의 전 재상 바지 라오 2세(Baji Rao II)에게 비호를 받았다고 하나 확실하지 않다. 소녀 때부터 검술을 익히고 승마를 좋아했다고 하나 이것도 전설의 범주에 들어간다.

그녀에 대한 확실한 기록이 나타나는 것은 1842년 잔시 토후국의 왕에게 시집간 뒤부터이다. 잔시 토후국은 옛날부터 교통의 요충지로 번영한 마라타 동맹의 작은 왕국으로 영국과 군사보호조약을 맺고 토후국이 됐다.

1851년 왕과 사이에서 자식을 한 명 두었으나 곧 병으로 죽고 말았고, 왕은 1853년 이후부터 중병에 걸려 그녀는 양자를 들이는 동시에 토후국의 존속을 위해 분주히 노력했다. 그러나 인도 총독 델하우지는 후계자가 없는 토후국은 영국 동인도 회사에 병합하는 <실권의 원리>(소위 말기 양자는 인정하지 않는 개혁)라는 토후국 합병 정책을 추진했으므로 그녀의 노력은 영국 측에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같은 해 12월 왕이 병으로 사망하자 1854년 2월 27일 잔시 토후국은 영국에 합병된다. 영국이 성을 접수할 때 거절하며 한

“मेरे झाँसी नहीं देंगे/(나는 잔시를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라는 말은 지금까지 널리 알려졌다.

 

 

왕국을 잃은 후 3년 동안 은둔한 락슈미 바이는 드러나는 반영국 활동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1857년 5월에 인도 대반란(세포이 항쟁)이 발발하자 잔시에서도 세포이와 민중이 봉기하고 잔시 성에 주둔하고 있던 영국군을 항복시킨 후 포로를 학살하자 반란군과 영국의 중재를 시도하던 그녀도 학살에 가담했다는 의심을 받게 된다. 게다가 세포이들이 델리로 진군하면서 잔시는 공백 지대가 되어 민중의 추천을 받은 락슈미 바이는 잔시의 정권을 잡게 된다. 개인 재산을 털어 모은 용병과 민중의 지원으로 이루어진 의용군을 이끈 그녀는 7월 영국과 손잡고 있는 이웃 토후국의 왕, 영주의 공격을 스스로 선두에 서서 격퇴하고 8월에 잔시 성을 탈환해서 일약 반영국 전쟁이 기수로 이름을 알리게 된다.

이 사건으로 영국과 적대하게 된 잔시는 영국군의 공격을 받는다. 근대적 장비를 가진 압도적인 대군에 맞서 여자들까지 포함된 의용군을 중심으로 대항한 잔시 군은 완강하게 저항을 계속하고 영국의 지휘관 휴 로즈 소장은 너무나 고전해서

“이유는 명약관화하다. 그들은 왕비를 위해 그리고 자기 나라를 독립시키려고 싸우고 있기 때문이다.”

라는 기록을 남기고 있다.

 

인도의 잔 다르크 락슈미 바이

락슈미 바이도 스스로 라이플을 손에 들고 싸웠으나 보름간의 농성 전 끝에 1858년 성은 함락되고, 민중의 애원을 받은 락슈미 바이는 약간의 병력과 함께 성을 탈출했다(도중에 한번 영국군의 포로가 됐으나 호송하는 영국군 사관을 스스로 죽이고 탈출했다는 일화가 남아있다.).

락슈미 바이는 탈출한 후 카르피 성에서 다른 반란군 지도자들과 합류하나 결정적 시기를 찾고 있던 다른 지도자들과 철저항쟁을 부르짖는 그녀는 의견이 맞지 않았고 여성이라는 점도 문제가 되어 고립되고 만다.

얼마 후 카르피 성도 영국군의 공격을 받아 함락되자 다시 탈출한 그녀는 계략을 세워 6월 1일 괄리오르 토후국이 지배하고 있던 괄리오르 성을 무혈탈취한 후 그곳을 거점으로 삼았다.

여기에 충격을 받은 영국군은 괄리오르 성에 대군을 보내 공격했다. 같은 달 16일부터 총공격을 감행 6월 18일에 출진 중이던 락슈미는 전선에서 지휘 중 저격당하여 전사한다. 결국, 20일에 괄리오르 성은 함락된다.

락슈미 바이와 몇 번이나 싸웠던 적장 휴 로즈는 그녀의 유체를 수습하고 귀인에 대한 예로 장례를 치렀다고 한다.

 

인도의 잔 다르크 락슈미 바이

락슈미 바이는 민중을 이끄는 카리스마와 우수한 전술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잔시 토후국을 유지하기 위해 인도 총독에게 보낸 글은 그녀가 인도뿐만 아니라 유럽의 법률과 외교, 역사에도 능통했다는 것을 잘 나타내고 있다.

적군이었던 영국 장교가 남긴 말을 빌리면 “가장 뛰어나고 가장 용맹한 여성”이었다.

1947년 8월 인도가 독립한 후 락슈미 바이는 인도 대반란의 영웅으로 재평가를 받아 각지에 동상이 세워졌다. 인도 각지에 있는 동상에서 그녀는 대부분 사리를 입고 있으나 실제로는 블라우스와 서양풍 승마 바지 차림을 자주 했다고 한다.

네루는 그의 저서에서

“빼어난 명성을 가지고 지금도 사람들에게 경애를 받는 인물”

이라고 기록한 대로 그녀는 지금도 인도의 영웅으로 존경을 받고 있다.



아내를 사장으로 하세요
국내도서
저자 : 사카시타 진 / 김영택역
출판 : e비즈북스 2014.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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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최대규모의 해적단을 이끈 여해적 정일수




원피스라는 만화는 많은 사람이 알 것으로 생각한다. 일본과 한국은 물론이고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만화이다. 이 원피스의 주인공은 해적이다. 남자인 내가 봐도 멋지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원피스의 주인공 루피와 그 일당들의 모습은 멋있다. 하지만 이것은 만화라는 매체를 통해 작가의 생각과 말이 우리에게 투영되고 있을 뿐 실제의 해적이 저렇게 멋지다고는 생각할 수 없을 것 같다. 국제법상 해적행위는 엄연히 척결되어야 할 중죄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해적행위는 목숨을 내놓고 해야 한다. 때문인지 해적은 아무래도 남자의 영역이라는 고정관념이 꽤 강하게 뇌리에 박혀있다. 이런 남자도 힘든 거친 해적의 삶을 살면서 유명해진 여성이 있다. 게다가 그녀는 토벌을 당하지도 않았고, 흔히 이런 곳에 몸담고 있던 사람이 그렇듯이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지도 않았다. 그녀의 이름은 정일수(鄭一嫂). 창녀 출신으로 19세기 중국에서 세계최대규모의 대해적단을 이끈 여성이다. 수만 명 이상의 해적이 그녀를 따랐다고 하니 그 위세를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정일수는 청나라 최전성기였던 1775년 무렵 태어났다. 태어났을 때의 사정은 알려지지 않으나 그녀가 26세가 됐을 때쯤에는 이미 광동성의 수상 매춘업에 몸을 담그고 있었다고 한다. 그곳에서 <홍기방(紅旗幫)>이라는 해적단 두목이었던 정을(鄭乙)과 결혼을 하게 된다.

결혼까지의 경위는 “해적이 강제로 납치했다.”라는 설과 “정을이 평범하게 청혼했다.”는 설 등 연구자에 따라 의견이 나뉜다. 어쨌든 정일수는 결혼 후 해적단 운영을 돕게 된다.

그 후 몇 년 만에 홍기방의 함선은 200척에서 600척으로 급성장한다. 다른 광동 해적들과 연합을 조직하고 그 규모는 1807년에는 1,700척을 넘는 대해적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이해에 정을이 태풍을 만나 죽게 된다.

남편이 죽은 후 정일수는 바로 홍기방을 장악하기 위한 행동에 나선다. 정을의 양자였던 장보자(張保仔)를 추대하고, 그와 결혼해서 지위를 확립한다. 장보자는 원래 어부의 자식이었으나 15세 때 홍기방에 납치되어 해적이 됐다. 그 재능을 정을이 높게 쳐서 양자가 된 인물이다.

해적단의 실권을 장악하자 정일수와 장보자는 조직 내에 새로운 규칙을 발표했다. 계속 팽창하는 조직을 통제하기 위한 철칙이었다.

 

∙ 명령에 따르지 않는 자는 목을 베어 바다에 던진다.

∙ 약탈한 보물을 배분하기 전에 훔친 자는 목을 베어 바다에 던진다.

∙ 허가 없이 여성을 폭행한 자는 목을 베어 바다에 던진다.

∙ 임무 중 밀통한 자는 목을 베어 바다에 던진다. 상대 여성은 무거운 돌을 달고 바다에 던진다.

∙ 공물을 받은 마을과 배에서 도둑질이나 난폭한 행위를 한 자는 목을 베어 바다에 던진다.

∙ 허가 없이 육지에 오른 자는 목을 베어 바다에 버린다.

∙ 조직을 빠져나갈 때는 귀를 자른다.

∙ 추한 여성을 포로로 했을 때는 그대로 놓아준다. 아름다운 여성을 포로로 했을 때는 선원에게 보수로 제공하거나 혹은 선원이 살 수 있다. 단, 그 여성을 손에 넣은 선원은 여성과 결혼해야 하며, 진정으로 아내와 같은 대우를 해야 한다. 이것을 어긴 자는 목을 베어 바다에 던진다.

 

이런 규율은 예외 없이 엄격하게 지켜졌다. 홍기방의 포로가 됐던 영국의 리처드 글래스블루는 “이 엄격한 규칙이 그들이 전투에서 용맹함과 열세에 처해도 굴복하지 않는 힘의 원천이다.”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엄격한 규율을 바탕으로 홍기방은 더욱 세력을 확대해서 최전성기였던 1810년에 1,800척의 배와 7만~8만(약 1만 7,000명이 정일수의 직속)을 거느리는 대해적으로 성장했다. 청나라 왕조에 다수의 첩자를 잠입시키는 뒷공작도 빈틈없었고, 광동 연안 일대/남중국해를 사실상 지배하게 됐다.

또한, 정일수는 전형적인 약탈행위뿐 아니라 <비즈니스적 면>에서도 수완을 발휘했다. 그중 하나가 해상 통행료 시스템이다. 남중국해를 왕래하는 상선에서 돈을 지급하면 항로의 안전을 보장했다. 물론 거절하면 약탈 대상이 됐다. 정일수는 이런 수단을 써서 거대조직을 운영했다.

 

하지만 해적이 이렇게 위세를 떨치면 황제도 손을 놓고 있을 수 없다. 마침내 청나라 왕조는 홍기방을 진압하려 해군을 출진시켰으나 반격을 받아 63척의 대형선박을 빼앗기고 말았다. 포로가 된 해군 군관들은 해적에 가담할지, 극형을 받을지를 선택하게 했고, 대부분은 홍기방에 참가했다. 당시 해군을 지휘하던 장군은 포로가 되기 전 자결했다.

자신들만으로는 처리가 어렵다고 생각한 청나라 왕조는 막대한 돈을 풀어서 영국, 포르투갈 등 서양국가에 지원을 요청했다. 연합해군이 약 2년에 걸쳐 홍기방을 몰아내려 노력했으나 구체적인 성과를 얻을 수 없었다. 그래서 청나라 왕조는 홍기방을 무력으로 굴복시키는 것보다 은혜를 베풀어 사태를 수습하는 방향으로 생각을 바꾼다.

처음에는 왕조의 제안을 거절했던 정일수였으나 결국 은사를 받아들여 홍기방을 해산시켰다. 해산의 대가로 왕조와 합의한 조건은 “해적단 전원에게 은사를 베푼다.” “지금까지 약탈한 재물을 몰수하지 않는다.”라는 것이었다.

이렇게 죄가 너무 심한 376명은 처벌을 받았으나, 그 밖의 전원이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고 자유의 몸이 됐다. 그중에는 청나라군에 들어간 자도 있었는데 정일수의 남편 장보자는 청나라 해군이 되어 고급 무관으로 출세했다고 한다.

한편 정일수는 황제에게 작위를 받고 왕조가 공인하는 귀족이 됐다. 35세에 해적에서 완전히 은퇴하고, 해적 시절에 번 거액의 부로 광동성에서 도박장/숙박업소를 개업했다. 65세로 세상을 뜨기까지 그곳의 경영은 계속했다고 하며 적어도 한 명 이상의 자녀를 가졌다고 한다.

 

그녀는 역사상 가장 성공한 해적 선장이라고 할 수 있다. 창녀로 시작해서 사상 유례가 없는 대해적단을 이끌었을 뿐 아니라, 사로잡히거나 전사하지 않고 막대한 재물을 손에 넣고 은퇴했다. 그 후에도 유복하게 살아가다 죽은 세계적으로도 드문 성공한 해적 선장이었다.



아내를 사장으로 하세요
국내도서
저자 : 사카시타 진 / 김영택역
출판 : e비즈북스 2014.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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